이별, 그리움, 기다림을 항구라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담아낸 ‘목포의 눈물’과 ‘돌아와요 부산항에’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다 위의 멋쟁이 마도로스를 노래한 ‘아빠는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휴식과 자유, 낭만의 공간으로 여름 바다를 노래한 ‘여름 이야기’와 ‘해변의 여인’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우리 대중가요 속 바다로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안내합니다.
안녕하세요 음악평론가 임진모입니다. K-오션MOOC를 통해 여러분들과 바다에 대한 음악 이야기를 하게 돼서 굉장히 기쁩니다. 바다의 흥얼거림은 인류가 듣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가 음악이라는 얘기죠. 바다는 문학, 미술 등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줬지만 특히 음악은 결정적이었습니다. 클래식이든 대중가요든 강력한 상징으로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죠. 바다의 광활함 그리고 신비로움,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 노래에 취해서 그런 것들이 바로 바다가 주는 신비로움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바다는 무섭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하지만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정감은 바로 이거죠. 아름다움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바다와 친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우리가 사랑한 대중가요 속 바다로의 여행을 통해 같이 알아보시죠 바다하면 또 떠오르는 언어가 과연 뭘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항구, 포구 이런 것들일 겁니다. 항구와 포구가 말하는 것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배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들어오고 떠나는 것을 의미하죠. 당연히 이별의 공간입니다. 사실 이별의 공간은 굉장히 많지만 과거에는 압도적인 것이 바로 항구에서의 이별, 포구에서의 이별이었습니다. 아마 이와 관련돼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역시 대한민국 가요사의 명작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일 겁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항구에서의 이별로 슬픔에 사무친 마음을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넓고 예측할 수 없는 바다로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사이에서는 바다라는 범접할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죠. 폭풍에 거칠어진 바다는 항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이었을 거고요.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이라는 노랫말에서는 항구가 단순히 장소가 아닌 기다림과 눈물이 얽혀있는 애달픔이 됩니다. 그리고 왜 목포였을까요?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일본에 의한 경제적인 수탈이 심한 시기에 목포항은 군산항과 더불어 전라도에서 수확한 쌀의 상당량이 일본에 반출되는 곳이었습니다. 노래 가사의 일부 내용도 검열에 걸려서 가사 수정을 지시 받았습니다. 이처럼 노래의 제목과 가사는 그저 듣기 좋고 편하게 불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는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대중의 감정을 전달하기에 불려지게 되고 또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어떻게 보면 60년대 이후에 몇 가지 중요한 노래가 있습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그리고 신중현의 「미인」도 있죠. 제가 볼 때는 77년 산울림의 「아니 벌써」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이후에 많은 조용필의 노래들. 그리고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하지만 그 모든 노래 못지않게 대한민국을 완전히 울린 노래가 바로 가왕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입니다. 이 곡은 사실 원래 있었던 곡입니다. 조용필의 신곡이 아니라는 거죠. 처음에는 「돌아와요 충무항에」 그리고 또 나중에는 「돌아와요 해운대에」 이렇게 불렸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조용필에 와서 이 노래가 의미를 갖게 되는 건 시대적인 환경에 있습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우리 남쪽과 북한은 당시에 치열하게 대치하고 갈등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7.4 남북 공동성명(1972년 )공동성명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남한의 이후락이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서 '이제 더 이상 우리 이렇게 대치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 그러면서 남북 평화 모드가 조성이 됩니다. 이게 가장 영향을 미친 건 실제로 일본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교포와 상대를 했잖아요. 일본 교포도 둘로 나뉘었습니다. 민단(재일본 대한민국 민단)과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조총련계에는 우리가 흔히 좌측(북한지지)이었기 때문에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얘기는 조총련계의 교포, 동포들은 한국을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남북 평화모드를 위해서 이분들이 우리 고국에 방문하게 됐죠. 이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등장했습니다. 사실 부산항이 뭘 의미합니까? 많은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바로 부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별의 장소, 한의 장소였던 거죠. 이걸 자극한 게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인데요. 노래가 참 기가 막힙니다. 1절은요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의 정안 그래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고요. 2절은요 '돌아왔다 부산항에' 입니다. 이 얘기는 뭐냐? 바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노래가 상당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조용필이 직접 이 노래의 기타리프를 만들었죠 또 중간에 김동석의 바이올린 연주가 들어갑니다. 조용필이 정말 황홀한 음색으로 이 노래를 불러주는데요. 아마 우리 대중가요 중에 절창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모두 무엇이 만들어주는 것이냐? 바로 1절, 2절의 그 미학 바로 그 관통하는 언어는 바다입니다. 바다는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심정적 또는 물리적 공간적 거리를 의미합니다. 사실 바다로 떠났다, 그건 다시 못 볼 사람이라는 것도 의미하지요. 그래서 의미를 가졌던 게 「바다가 육지라면」 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자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던 트로트 가수 조미미의 결정적인 히트곡인데요.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이 모든 것이 만약에 한국을 떠나서 일본에 사는 사람 또는 미국으로 간 사람, 이 사람들이 볼 때 그 바다는 정말 갈 수 없는 그런 그야말로 생이별의 공간 아닐까요?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배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참 대단한 가사입니다. 이 가사를 쓴 정귀문 선생님이 바로 경주가 고향인데요. 그걸 보고 쓴 게 「바다가 육지라면」입니다. 그래서 지금 경주의 나정해수욕장에 가면 이 곡의 노래비가 서 있습니다. 바다는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별을 통해서 비애와 애환을 갖다가 전달해 주는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와 관련된 노래의 첫 번째 정한은 바로 우리의 이별의 한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바다는 이별의 한이 전부가 아닙니다. 바다가요, 또 어떻게 보면 가난한 나라가 좀 더 살 수 있게 된 나라 다시 말하면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어보겠습니다.